2010년 3월 20일 토요일

서울나들이


                                                  황수민

우리가족은 서울나들이를 갔다.


맨 처음 간곳은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우리 동네 도서관이랑 비교했을 때 훨씬 크고, 엘리베이터가 유리였고, 1층에는 책이 없었다. 그곳에서 아빠를 만나서 기뻤다.

우리가족은 고기를 먹으러 갔다. 식당에서 맛있는 꽃등심을 먹고 있는데 고기가 탔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덕수궁에 갔다. 경복궁처럼 큰 줄 알았는데 너무 작았다. 그래서 많이 실망했지만 그곳에서 열리는 보테르전에는 볼게 꽤 많았다.

보테르의 그림은 미국박물관처럼 서양식 건물 안에 있었다. 엄마가 빌려주신 기계를 통해 오디오 설명을 들으면서 봤다. 보테르는 자기나라를 많이 사랑해서 자기나라와 관련 있는 것을 많이 그렸다. 사람들의 생활을 자기가 본대로 그린 것 같다. 보테르는 사람만 부풀려 그려서 사람들이 뚱뚱하게 보였다. 컴퓨터에서 볼 때는 엄청 뚱뚱했는데 실제로 보니 조금만 뚱뚱했다. 그림 속에 담배꽁초가 많아 지저분하게 보였다. 내가 만약 화가라면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그리겠다. 나만의 방식은 사람을 간단하게 그리는 것이다.

저녁은 맛있는 식당에 가서 자장면을 먹었다. 밤이 되어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호텔에 갔다. 호텔에는 처음 가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호텔에는 엄청 푹신푹신한 침대가 두 개가 있었고 내가 보기에는 방도 컸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우리는 창덕궁에 갔다. 안내하는 선생님께서 설명도 해줬다. 나와 내 동생은 선생님을 졸졸 따라 다녔다. 선생님은 내가 갖고 싶다는 부채도 빌려줬다. 나무가 많아서 여름인데도 시원하고 상쾌했다.
<창경궁에서 황수민, 황지윤>

나는 창덕궁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세계문화유산에도 등록되어 있는 창덕궁은 다른 궁보다 보존도 잘되어 있어 엄청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 태종 이방원이 세종대왕 아버지가 될 만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조선 왕궁 중에서 창덕궁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경복궁과 다른 점은 경복궁은 연못만 있었는데 창덕궁에는 정원도 있었고, 적의 침략을 잘 막기 위해 궁을 자연과 하나처럼 지었다. 경복궁의 길은 거의 직선인데 창덕궁은 미로처럼 구불구불하였다.

종묘에 갔다. 종묘는 사당과 같은 곳으로 죽은 임금님을 모시는 곳이다. 종묘는 창덕궁과 비슷한데 색칠이 안 돼 있다. 아름답지 않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돌로 만들어진 신로가 있는데 진짜 신이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신로를 밟고 가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
<종묘에서 황수민>

종묘 옆에 있는 창경궁도 구경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는 사실은 창덕궁과 같이 동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창경궁 어디쯤에서 황수민>

밤이 되어 우리 가족들은 새마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차를 타고나니 잠이 너무 많이 와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무척 힘들었지만 즐거운 서울나들이였다. 다음에 또 가고 싶다. 끝.

                                             2009년 황수민이 쓰다.

2010년 3월 18일 목요일

일기쓰기

가끔 아들 녀석이 일기를 쓰는 모습에서 어릴적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일기를 거의 적지 않았지만 방학이 끝나갈 무렵이면 어김없이 몰아치기 일기를 적을때도 있었다. 그런 일기를 적으면서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똑같이 놀다가 잘 건데, 정말 똑같은 일과일텐데 일기장에는 도대체 뭘 적어야지?'하는 걱정을 하였다.


아들 녀석도 "아빠, 오늘 적을께 없는데. 일어나서 학교가고, 수업받고, 집에와서 놀다가 숙제하고. 이게 단데 뭘 적지?"


이를 때면 나 자신도 실천하지 못했던, 지금도 실천하지 못하는 말들을 마구 쏟아낸다.
"아주 작으마한 일, 또는 어제와 똑같은 일일지라도 그것을 할때 너의 느낌, 생각을 적으면돼. 음 무지개 만드는 프리즘 있지. 그것처럼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하도록 노력해봐"
이렇게 말은 하지만 솔직히 찔린다.



아들은 몸을 배배틀다가 드디어 일기를 다 적었다며 자랑스럽게 일기를 보여준다.

괴발개발 적은 아들의 일기장에는 명확한(?) 두가지의 아들 생각이 적혀져 있다.
"~~~했다. 좋았다." 또는 "~~~했다. 안좋았다."


먼 훗날 아들녀석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일기를 쓸때면, 그때는 지금의 모습보다는 나은 모습이 연출될 수 있을까하고 상상해본다.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하는 즐거운 상상이다.


                                                                                                                                    2010.03.19일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만해 한용운 생가를 다녀와서

3월이면 봄기운이 완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서해안은 바닷물의 영향으로 이른 봄을 상상하며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초에 이번 여행을 준비했다.  기상청의 일기예보에는 일요일은 매우 화창하고 따뜻할 것이라고 말해 한줌의 의심도 없었다. 아 내일은 따뜻한 봄햇살을 받으며 봄기운이 돋는 서해의 바닷가를 걸을 수 있겠구나 했다.


2009년 즈음에 개통한 대전당진간고속도로를 지나 홍성을 지날 때였다. 도로에 세워진 갈색 안내표지판에는 김좌진장군과 한용운님의 생가가 멀지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내일 돌아오는 길에 시간을 내어서 꼭 들러야겠다.’
‘흠. 홍성에 이런 인물들이 있었단 말이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본 할매 할배섬(?)>


안면도자연휴양림에서 1박을 한 후 가까운 곳에 있는 꽃지해수욕장을 둘러보았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는 전날보다 싸늘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렸다. 가볍게 기상청 험담을 좀 하고난 후 바삐 귀갓길에 올랐다.



‘아참! 만해 한용운님의 생가 터가 있었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즐거운 상상이 이어졌다.
‘일단 한용운님의 대표적인 시 님의 침묵을 가슴에서 울어나게 낭독을 하면, 아들 녀석이 무슨 내용이냐고 묻겠지? 그럼 시에 나오는 님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이런 시를 썼고, 또 한용운님이 내가 살던 곤명의 다솔사에도 기거했었다고 말해줘야지.  그럼 으하하 나를 우러러 보겠지.’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용운님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네. 험. 쪽 팔리면 안 되는데.아내에게 좀 물어볼까? 님이 무엇을 뜻했지? 이런 젠장 시험만을
위한 공부를 했나 왜 생각이 안 나지?’


대전으로 돌아오는 큰길에서 제법 빠져 아담한 곳에 만해 한용운님의 생가 터에 도착했다. 일단 아들딸을 데리고 생가를 갔다. 여느 유명인의 생가와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부엌이 있는 초가집. 처마 밑에는 님의 침묵이 적혀있었다.
<만해 한용운 생가>

“아들 딸, 잘 들어. 이거 정말 좋은 시야”
“만해 한용운님은 아주 훌륭하신 분이야.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았아 갔을때 이를 되찾기 위해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헉 열심히 읽고 있는데 한자에 부딪쳤서 낭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이런 낭패가 있나. 아참 아이폰으로 검색을 해보면 되겠다’


아이폰으로 검색하는 잠간 동안에 이미 아들녀석은 나와 시와 한용운님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방명록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아들 녀석은 “저도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한자(漢字)가 한 자도 없는 님의 침묵을 찾은 후 아이들에게 닥달을 했다.
“야! 잘 들어. 다시 읽어 줄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야! 집중하고 들어야지.”
“여기서 님은 조국을 말하는데 그런데 왜 님은 갔다고 말했느냐 하면 조국이 일본에 빼앗겨서 슬퍼다는 것이지. 응 알겠어?"
"야! 잘들어. 그런데 슬퍼만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야. 새 희망을 얘기하지. 새 희망의 정수박이 이 부분이 바로 독립 즉 광복을 노래한다는 거야. 야. 아빠가 노래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 노래라는 것은 니나노가 아니야. 희망을 이야기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거지. 누가 지었다고?  야야야. 한용운이라 말했잖아. 님이 뭐라고? 그래 조국이야.”


이런 나의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아이들에게 암기를 강요하는 능력없는 샌님 모습이었다.



이렇게 한용운 생가의 추땀에서 열불을 올리며 열강을 하는데,  한쌍의 중년의 부부는 생가를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이 웃고 지나가고, 아내는 저만치 사립문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딸도 방명록에 적겠다고 나섰다. 뭐라고 적나 가만히 보았다.
“저도 훌륭한 사람이 될께요.”
‘오호 여기서 저도의 ‘도’는 한용운 선생님이 나라를 사랑했듯이 자기‘도’ 나라를 사랑한다는 뜻이겠지?
흠 데려온 보람이 있구만’



광장으로 나오니 ‘나룻배와 행인’, ‘복종’ 등 여러 가지 시비가 세워져 있었으나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지식 암기 위주의 견학은 시도할 수 었었다.
‘에궁 내 입만 아프지. 기념관에나 가자’



기념관에서 이런 저런 영상물도 보고 모형도 보았다. 아들 녀석은 홀로 그래픽에 빠져 몇 번인가를 보더니,
“아빠, 한용운선생님이 독립선언문 낭독할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래. 민족대표에는 주절주절”
조금 전 본 홀로 그래픽의 내용을 최대한 근접하게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기념관 옆 만해체험관에는 탁본을 경험할 수 있게 준비가 되어있었다.
<만해 한용운 흉상>

딸 아이는 “나는 스님할래”라며 먼저 선점을 했다.
나는 님의 침묵을 선택했다. 아들 녀석은 내가 선택한 것이 좋아 보였는지 자기가 궂이 님의 침묵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황수민. 이건 글자가 많고 섬세하게 해야해. 아빠가 할께”
“내가 잘 할 수 있어”
기어코 아들 녀석이 님의 침묵을 차지했다.


나는 마저절위(磨杵絶韋) “절구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었다는 뜻과 대나무 책의 가죽 끝이 끊어졌다는 고사로 쉬지말고 노력하라는 뜻” 탁본을 선택했다.
‘‘韋編三絶’과 유사한 뜻이구만.‘

딸아이와 나의 탁본은 그런대로 잘 만들어졌다. 아들 녀석의 탁본은 손에 검정잉크는 잔뜩 묻히고도 예상대로 제대로 된 완성품은 나오지 않았다.
관리자분은 워낙 원칙에 충실하셔서 1인 1매만 가능하다고 하시니 더 요구하자니 남사스럽고, 또 시간도 많이 흘렀고 해서 만해 한용운님의 생가터를 떠나 대전 집으로 향했다.



                                                                               2010.03.14

황외석 적음

2010년 3월 14일 일요일

마저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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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절위(磨杵絶韋>
절구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었다는 뜻과 대나무 책의 가죽 끝이 끊어졌다는 고사로 쉬지말고 노력하라는 의미

복종 - 한용운

               복종(服從)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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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느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어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어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行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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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의 침묵(沈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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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생가터를 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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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생가터를 가다

안면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해 한용운 시인의 생가터를 드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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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자연휴양림을 가다3

한옥3호의 전경이다.
화장실은 작지만 깨끗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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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자연휴양림을 가다 2

다른 휴양림과 달리 대부분 소나무로 이루어진 특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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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자연휴양림을 가다

안면도 자연휴양림의 정말 나즈막한 봉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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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7일 일요일

경남 사천시 완사의 겨울 녹차밭 2

경남 사천시 완사에 조성된 평지의 녹차밭
지난 설날 겨울 녹차밭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여 산소가는 길에 들렀다.
비록 황량한 모습이지만 새싹이 돋아나고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잎들을 상상해보면 멋진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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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시 완사의 겨울 녹차밭

경남 사천시 완사에 조성된 평지의 녹차밭

지난 설날 겨울 녹차밭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여 산소가는 길에 들렀다.
비록 황량한 모습이지만 새싹이 돋아나고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잎들을 상상해보면 멋진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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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6일 토요일

증명사진 크기

  <출처 >  https://guideyou.tistory.com/entry/%EC%82%AC%EC%A7%84-%ED%81%AC%EA%B8%B0-%EC%82%AC%EC%A7%84-%EC%9D%B8%ED%99%94-%EC%82%AC%EC%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