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8일 화요일

눈 내리는 날

눈 내리는 날
 
오늘 대전에 눈이 내렸다. 하얀 눈이 비처럼 빛의 속도로 내렸다. 하지만 따뜻한 날씨탓에 쌓이지는 않았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고 있는데 동료가 딸아이에 아빠가 눈을 내리게 했다고 전화를 해주면 좋아할 거라고 말해줬다.
 
‘내가 눈을 만들어서 보냈다고 하는데 설마 믿기나 하겠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요즘 부쩍 사소한 일에도 나에게 눈 꼬리를 치켜세우는 7살 딸아이 모습이 생각나 혹시나 해서 전화를 했다.
 
“황지윤. 눈 오는데 봤어? 이 눈 아빠가 내리게 한거야.”
“뭐~?”수화기 너머로 지윤이의 황당한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진짜야. 우리 지윤이가 하얀 눈을 좋아하니까 아빠가 보내준거야.”
“어떻게?” 이미 목소리는 의구심이 아닌 놀람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빠가 하느님에게 전화해서 눈을 내리게 했어.”
“진짜? 와~~~” 수화기 너머로는 “엄마. 아빠가 하느님에게 전화해서 나 보여주려고 눈이 오는거래. 쏼라쏼라~~”
 
눈의 약효가 하루는 가야할텐데. 기분 좋은 하루였다.

                                          2010년 12월 28일  아빠 황외석












황지윤 - 2010년 산타의 편지





첫 번째 심청이 역할을 정말 잘한 황지윤양에게
 
황지윤양. 안녕. 나는 산타할아버지예요.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지윤이가 심청전에서 첫 번째 심청이 역할을 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와서 봤냐고요? 아뇨. 정말 궁금하죠? 비밀을 말해줄까요? 말해달라고요? 알았어요.
 
사실, 황지윤양의 학습발표회에 가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이곳 북극마을은 12월이 되면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한 선물준비에 무척 바빠요. 그래서 그런데 그날 밤에 지윤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어요.“우리 딸이 있는데요. 이름은 황지윤인데요. 오늘 심청전에서 첫 번째 심청이 역할을 너무너무 잘했어요.”라고 막 자랑을 했었어요. 그래서 산타가 알게 되었어요.
 
그나저나, 올 한해 우리 황지윤양이 선물을 받을 만큼 착한 일을 많이 했는지 확인을 해볼까요?
이 산타할아버지의 수첩에 황지윤양은 “예쁨, 가끔은 시샘”이라고 적혀있네요. 자세히 살펴볼까요?
 
“예쁨” : 예쁨이란 아름답다는 뜻이죠? 너의 생각, 말, 행동들이 모두 좋다는 말이죠. 훌륭해요.
 
“가끔은 시샘” : 가끔 지윤이가 오빠를 시샘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군요. ‘엄마, 아빠는 오빠만 좋아해’라고 앙탈을 부렸군요. 이런 너의 모습이 ‘나에게 좀더 관심을 가져주세요’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을 산타는 잘 알고있어요. 그래서 이 산타가 엄마, 아빠에게 전화해서 지윤이를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해주라고 했어요. 잘했죠? 이젠 시샘하지 말아요. 알았죠?
 
내년에는 우리 지윤이도 초등학교를 가게 되었군요. 초등학교는 너에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알지 못했든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 곳이기에 결코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해요. 하긴 많은 사람들이 앞에서 심청이 역할을 멋지게 해낸 실력자 황지윤이므로 자신감이 충만하겠네요. 그나저나 초등학교에 갈수 있을 정도 책도 또박또박 읽고, 글도 예쁘고 크게 잘 적을 수 있죠? 혹시 부족하면 지금이라도 연습하세요.
 
내년에도 기쁨 마음으로 우리 황지윤양에게 선물을 줄 수 있게 늘 건강하고 즐겁게 학교를 다녔으면 해요.
이 산타할아버지가 북극에서 잘 보고 있을께요. 안녕
 
2010년 12월 25일
 
첫 번째 심청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황지윤이를 사랑하는 북극에 사는 산타할아버지가
 

황수민 - 2010년 산타의 편지




샘머리초등학교에 다니는 황수민君에게
 
황수민군. 안녕. 2010년 한해도 건강하게 잘 살았군요.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기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해요. 첫째, 맛있게 먹어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둘째, 즐겁게 운동하여 육체를 튼튼하게 하고, 셋째, 독서와 생각으로 정신도 튼튼하게 하는게 필요하지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황수민군은 무척 건강하고 멋진 학생으로 자라고 있어 이 산타가 기분이 좋아요.GOOD
 
그나저나 우리 수민군이 선물을 받을만큼 멋진 생활을 했는지 살펴봐야겠어요. 산타의 수첩에는 올 한해 황수민군의 생활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어요.
“기대 → 실망 → 그래도 희망”.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기대” : 3학년이 된 황수민군에게 엄, 아빠는 기대를 했어요. 황수민군이 공부도, 운동도 모두 모두 잘할 거라고 믿었어요. 왜냐하면 이젠 학교 공부가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죠. 이젠 하고싶다고 하고, 하기싫다고 하지않을 시기가 아니기때문이죠. 서서히 친구들과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는 시점,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되기 때문이죠.
 
“실망” : 그런데 황수민군이 주위 사람에게 실망을 주기 시작했어요. 먼저 지난해 산타가 말한 “몰입”을 하지 않았어요. 공부를 집중해서 해야 하는데, 동생이 뭐하나? 하고 온통 관심이 그쪽에 가 있었어요. 동생이 하는 건 쉬워보였기 때문이죠. 동생 일에 참견하면서 정작 자신의 임무는 소홀히 했어요. 이런 공부 태도 때문에 당연히 학년말 시험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받았군요. 아빠, 엄마가 속상해 했어요.
 
“그래도 희망” : 황수민군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할 것이라 믿기에,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기에 ‘희망’이라는 횃불을 높이 들었어요. 위대한 인물들도 모두 어려움을 이겨냈듯이 황수민군도 어려움을 이겨낼 거라 믿어요. 이 산타도 수민군에 대한 희망을 내려놓지 않을께요.
 
벌써부터 2011년도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황수민군에게는 뭐라고 적혀있을지 궁금해지네요.
 
올해는 작년처럼 길게 적지 않을래요. 이 산타가 좋은 말을 많이 해도 무심히 흘려 보내버리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요. 올해는 황수민군이 공언무시(空言無施)하지 않았으면 해요.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2010년 12월 25일
아직 수민군에게 희망을 찾고 있는 북극의 산타가

2010년 8월 31일 화요일

잃어버린 지갑

지난 토요일 청주공항에서 출발하여 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로 들어오는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자 버스운전사 아저씨가 요금을 걷으셨다. 카드는 당연히 안 되고, 운임 3,500원은 지불하지만 버스영수증도 발행되지 않는, 그래서 요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버스라고 생각들게 하는 버스였다.


운전사에게 운임을 지급하고 지갑을 어디에 둘까 잠시 고민하다가 좌석 앞에 있는 거물 망에 잘 보이게 넣어두었다.
‘이렇게 잘 보이게 두었으니 나는 절대로 지갑을 잊어버리고 내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한 10년 이내에 내가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없고, 혹 잠깐 동안 내게 이탈했다가도 내게 돌아왔기에 나는 절대로 에나로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라며 내 지갑을 거물 망에 넣어두었다.
 
버스에 내려서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택시비를 준비하려다 보니 지갑이 없었다. 택시를 돌려 터미널로 급히 돌아갔다. 청소하시는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들어온 게 없단다. 사무실로 갔다. 관리자분이 해당 기사와 통화를 했다. 획득된 게 없다고 했다.
 
혹시 찾으면 연락을 부탁드린다며 전화번호를 남겼다. 주말 내내 혹시나 하며 휴대전화를 계속 만지작거렸지만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 얘기를 듣고 아내가 뿌루퉁했다. 지갑을 잃어버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안 좋은데 아내까지 인상을 쓰고 있으니 짜증이 났다.
 
아내에게 한 소리했다. 내 마음도 안 좋았다. 아내도 나도 뿌루퉁했다.


이젠 잃어버린 내 지갑과의 완전한 이별을 고해야 할 시점이다. 비바람 많이 치는 2010년 8월의 마지막날에 말이다.

아!!! 내 지갑. 안녕 내 지갑. bye bye 내 지갑.

2010년 8월 31일 황외석 씀

2010년 8월 29일 일요일

KMPLAYER 오디오 렌더러 장치 선택

이런경우에 있었다.
오디오 출력장치를 2개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떤 시기에는 스피커로 듣고 싶고 어떨때는 헤드폰으로 듣고 싶을 때가 있다.
헤드폰 잭을 스피크에 연결하거나 분리하는 방식이 아닌 방법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오디오 카드에 스피커와 연결하는 단자와 헤드폰 연결 단자, 마이크 연결단자가 각각 있는 경우  분명 오디오 출력 장치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구글링을 했으나 쉽지 않았다. 아마도 이를 오디오 렌더러 장치 선택이라고 하나보다.


그러던 중 Kmplayer가 이 기능이 지원되었다.
설정방법은 다음 그림과 같으며 글로 짧게 설명하자면
1. kmplayer 오른쪽 버턴 -> 환경설정/기타 -> 고급메뉴 사용
2. kmplayer 오른쪽 버턴 -> 음성처리 -> 오디오 렌더러 장치 선택 -> 듣고 싶은 장치 선택


[ 오른쪽 버턴 클릭 ]

[ 고급메뉴 선택 ]



[ 오디오 렌더러 장치 선택 ]


2010년 8월 29일 황외석 작성


2010년 8월 23일 월요일

처음으로 이 뽑는 날

처음으로 이 뽑은 날

어제 오후 찌는 듯한 늦여름의 더위를 느끼며 딸아이의 이를 처음으로 뺐다. 사실 아침부터 아니 전날 저녁부터 이를 뽑아주겠다고 그렇게 꼬드겼으나 이를 완강히 버티더니, 제 엄마의 감언이설 설득에 넘어와 아빠에게서 이를 뽑기로 했다며 앞에 앉았다.
[ 긴장하며 실을 묶는 아빠와 못 미더워하는 딸 ]

흔들리는 앞 이에 실을 묶고 순간적으로 낚아챘으나 실패했다. 너무 느슨하게 묶은 것이다. 처음의 실패로 아이는 긴장하고 바짝 얼어붙어 있었으나 나는 덤덤히 두 번째 도전을 준비하였다. 첫 번째보다 깊숙이 실을 넣어서 꽁꽁 묶었다. “지윤아. 진짜 안 아프게 빼줄게”라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고 주위를 환기시키면서 아이가 한눈판 사이에 잽싸게 실을 낚아챘다. 툭하고 이가 빠졌다. 온전하게 빠진 이에, 아이도, 아빠도, 못미더워하던 엄마도, 나의 마루타였던 아들 녀석도 신기해하면서 뽑은 이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 실은 일단 묶었습니다. ]

그러고 보면 첫 아이의 이 뽑는 날이 생각난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낑낑거리면서 준비를 하였다. 잘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실을 너무 세차게 낚아채는 바람에 뽑힌 이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이후 뽑힌 이는 결국 찾지 못했고 이로 인해 첫 아이에게 혼난 적이 있다.

딸 아이는 베게요정에게 헌 이를 줄 거라며 소중하게 챙겼두었는데 막상 잘 때는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내가 대신 이 말을 전했다.


[빠진 이를 유심히 보는 딸아이]







“까치야 까치야. 우리 지윤이 물어가고 예쁜 주렴


[첫음으로 뽑은 이]

2010년 7월 1일 목요일

너 그거 해봤어? 아이폰 탈옥의 추억

너 그거 해봤어? 아이폰 탈옥의 추억



2010년초 아이폰을 사자마자 기능을 익히기 위해 바빴다. 문자를 보내고 싶었는데 전화가 걸리기도 하고, 통화중 녹음기능이 없는데도 내가 몰라서 그럴거라며 구글링을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는 빨리 아이폰의 기능을 습득하고 나니 탈옥(jailbreak)이 눈에 띄었다.


사실 내가 멀티태스킹이 필요한 파워유저도 아니지만 iTunes에는 등록되지 않은 앱도 설치해보고 싶고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열광하는 탈옥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혹시 벽돌폰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안고 탈옥을 감행했다. 생각보다 손 쉽게 탈옥을 했다. 이것 저것 설치하고 바꾸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봤다. 몇일간 탈옥폰을 사용하다보니 본래 아이폰과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즈음에 금융권에서 아이폰용 앱을 공개한다는 소식이 들렸는데 금융정보 거래의 안정성을 위해 탈옥폰에서는 앱을 사용할 수 없게 개발되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몇일 후 나는 아이폰을 복원하기 했다. 복원은 탈옥보다 더 쉽게 이루어졌다. 완벽하게 복원했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아이폰을 사용하는 분을 만난적이 있었다. 그분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거 탈옥폰인가요?"
순간 나는 뜨끔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탈옥했다가 완벽하게 복원했는데."
"SHOW라고 뜨야 하는데 Shift라고 뜨는데요."

아뿔싸. 내 아이폰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탈옥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아직도 나의 아이폰에는 탈옥의 흔적이 남아있다. 정장 아이폰 화면 좌측 상단에는 SHOW가 나타나게 되어 있는데 나의 아이폰에는 Shift가 떤다.


                                                                                                                        2010년 7월
                                                                                                                               황외석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황수민 10번째 생일 편지











항상 아빠의 자랑인 아들 황수민이에게.
 
황수민. 너의 10번째 생일을 아주 많이 축하한다. 네가 태어나는 날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었는데,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오늘은 정말 덥구나. 학교는 잘 다녀왔겠지.
 
요즘 월드컵 경기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잖아.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처음으로 원정에서 16강에 진출했기에 사람들이 더욱 신 나 있어. 이렇게 기쁜 시기에 네 생일이 있어 더욱 즐겁구나.
 
너의 생일을 맞이하여 네게 무슨 말을 해줄까하고 고민을 좀 했어. 아빠가 서울에 있는 동안 네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메모를 해두었단다. 그것 위주로 얘기하려해.
 
아빠는 늘 우리 가족 모두에 대한 각각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곤 해. 10년, 20년 후 너의 모습은 어떨까? 키와 덩치에서 아빠보다 훨씬 크고 멋진 청년이 되어 있겠지. 힘도 아빠보다 세고 말이야. 또 멋진 직업을 갖고 세상 사람들에게 작지만 조그마한 도움을 베푸는 사람,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게 힘을 보태고 있는 청년으로 자랐겠지. 너도 알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진짜로 행복하잖아. 상상만으로도 아빠보다 훨씬 멋진 너의 모습을 상상하니 아빠 입술에 씽긋 웃음이 돋는구나.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것이 있어. 뭐냐 하면 이렇게 도움을 베푸는 멋진 사람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이루는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시도하고 노력해야 이루어 지는 거야. 아빠가 아는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 “미래를 예측하지 말라. 미래는 현재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즉 현재 시점에서 노력하지 않으면 더 나은 미래, 네가 꿈꾸는 미래는 단지 잡을 수 없는 무지개, 말 그대로 꿈일 뿐이라는 거지.
 
아빠가 너에게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자유야”
이렇게 말을 하면 넌 즉시 집에서 뛰어다니거나 네가 보고 싶은 TV를 보거나 심지어 공부도 하기 싫다고 안하잖아. 그러면서 넌 꼭 이렇게 말하지. “아빠가 내 마음대로 하라며. 이건 내 자유야”라고.
그런데 그건 엄밀히 말해서 ‘자유’가 아니란다. 사람들은 그것을 ‘방종’이라고 부르지. 그러면 자유와 방종은 무슨 차이일까? 자유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지. 어떤 형태의 자유를 실천하느냐에 따라 자유가 될 수도 있고 방종이 될 수도 있지.
예를 들어 네가 밥을 먹기 싫다고 안 먹었다고 치자. 그러면 네가 배가 고프잖아. 네가 밥을 먹지 않으면 배고픔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음에도 네 의지대로 밥을 먹지 않는 것은 네 자유야. 그런데 네가 친구 밥을 빼어 먹으면서 ‘내 자유다’라고 하면 안 되는 거야. 친구에게 피해를 주잖아. 사람들은 자유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지. 그래서 올바르지 않고 정정당당하지 않는 행동을 ‘자유’라는 단어로 포장하는 것을 싫어해. 왜냐하면 자유는 그런 나쁜 것으로부터 지켜야할 정말 소중한 것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잘못된 자유를 진정한 자유와 구분되게 방종이라는 말을 쓰는 거지.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 아빠가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서 ‘내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빠의 자유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어? 이것은 아빠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방종이지. 그러면 돈이 없어서 많이 불편할거야. 이렇게 자신의 위치에서 할 일은 제대로 하고 남는 시간에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란다. 그러면 수민이에게 자유는 어떤 것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수민아. 아빠가 네게 ‘수학을 열심히 해’라고 하잖아. 그러면서 나로호가 실패한 것도 수학을 못해서 그렇다고 말하잖아. 왜 이렇게 수학이 중요한 것 일까? 계산기로 계산하면 다 나오는데 말이야. 이런 의문이 들었었지?
수학은 네가 한글을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야. 왜냐하면 수학은 논리위에 세워진 탑이기 때문이야. 논리는 쉽게 말해서 상식이지. 의자가 하나있고 사람이 두 명 있는데 누군가가 ‘모두 의자에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잖아. 이 경우 의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수학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거야. 수학은 돌탑 쌓기와 비유될 수 있어. 돌탑 쌓기를 할 때 돌을 하나씩 가져다가 차곡차곡 쌓으면 멋진 돌탑이 되잖아. 나로호가 실패한 것은 차곡차곡 탑을 쌓아야 하는데 한꺼번에 쌓으려고 하다 보니 튼튼하고 꼼꼼하게 탑을 쌓지 못해서 그런 거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 생각을 끈을 연결하다보면 수학이 재미있는 과목이 될 것이고, 네가 좀 더 멋진 어른으로 자라는데 많은 도움을 줄 거야.
 
수민아!
마지막으로 이젠 네가 초등학교 3학년이잖아. 이젠 학교생활 중 네가 엄마에게 물어보고 결정할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스스로 결정하고 나중에 집에 와서 엄마에게 왜 그렇게 했는지 설명을 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해. 혹시 엄마때문에 또는 방과 후 일정 때문에 주저하다가 네가 후회하지 않았으면 해. 스스로 당당하게 행동하고 알지?
 
황수민. 건강하고 늘 웃고 열심히 하는 너의 모습이 너무 고마워. 앞으로도 늘 그렇게 자라줘. 알았지?
11살이 되는 내년에는 아빠가 무슨 말을 쓸까 벌써부터 궁금해지네.
편지를 다 쓰고 보니 너무 어렵게 쓰지 않았나 약간 걱정이 되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나중에 좀 더 커서 읽어봐. 알았지.
 
안녕.
2010년 6월 25일(이날은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난 날이기도 하지)
월드컵이 한창일 때 아빠가 아들 황수민에게 보냅니다.

2010년 6월 23일 수요일

2010년 월드컵(2010년 6월 24일 한국대 나이지리아)

한국 대 나이지리아전의 한강 응원단의 모습.
6월 17일 아르헨티나전 응원단의 2/3가량이였음



2010년 월드컵(2010년 6월 17일 한국 대 아르헨티나전)

2010년 6월 17일 한국 대 아르헨티나전 한강 응원단 모습
정말 바글바글 했음.

머리털 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것 처음봄.

결과는 대패였음. 사람이 정말 쓸물 빠지듯이 빠졌음.

 

삼하는 마을에 태풍이 오다

삼 하는 우리마을에는 해마다 태풍이 옵니다.
 
태풍이 오면 어김없이 마을 앞에 흐르는 강의 둑이 터집니다. 둑은 밤에 터지는 경우가 많은데 가끔은 낮에도 터집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물난리를 직접 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둑이 터지는 모습을 보면, 먼저 억수같은 비에 강물이 매우 빠른 속도로 내려갑니다. 수위는 거의 둑을 넘어올 기세입니다. 이런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면, 산을 보면 빗소리만 들리는 것 같은데 강물보면 천지개벽의 굉음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이 많으신분들의 표현처럼 무섭습니다.
 
저 멀리 제방 안쪽의 농경지에는 벌써 약간씩 물에 잠기기 시작합니다. 멀리서 봐도 나락목아지가 보이지 않는게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이 확실하며, 역류한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이때쯤에는 물의 흐름이 눈에 띄게 느려집니다. 동네 어른들은 혀를 차십니다. "어허, 둑 트지것네" 이러시면 오랜시간이 지나지 않아 제방이 나갑니다. 보통 한 50m이내로 뚫립니다.
 
제방난 틈으로 물들이 들어옵니다.  파도가 치거나 유속이 빠르지도 않아 무섭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틈엔가 마을회관 앞까지 물이 찹니다. 낮은 곳에 있는 몇몇 집의 변소에 물이 차서 넘칩니다.
 
마을 앞 뜰은 물이 방방합니다. 순식간에 호수로 바다로 변한것입니다.
 
호기심 많은 형들은 삼 삶는 솥을 떼어다가 배처럼 타보기도 합니다. 동네 어른들은 걱정어린 목소리로 "저, 저, 저 -----."하시며 혀를 차십니다.
 
하지만 어린 저의 눈에는 마냥 멋져 보입니다.
 
중학교때의 일입니다.
새벽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때문에 학교에서 우리 동네와 윗동네 아이들은 학교에 오지 말라고 연락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비가 많이 와서 혹시나 지각할까 하는 걱정에 평소보다 빨리 학교간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보낸 연락이 학교를 반쯤간 곳에서 듣게 됩니다. 이미 물이 많이 찬 길을 우회해서 학교를 거의 다왔는데 말이죠. 어찌되었던 이 소식을 듣게 된 중학생들은 쾌재를 부릅니다.
 
일단 우리마을 다리로 돌아갑니다. 우리동네 다리는 아주 옛날 새마을 운동할때 만들어진 다리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모래를 퍼서 시멘트와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증언에 의하면 시멘트가 조금 적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또한 자갈과 모래, 시멘트가 일정비율로 섞이지 않았다는 것이 교각에 그대로 나타난 다리입니다.

그러나 여타의 다른 동네 다리와는 달리 당시로서는 다리 폭도 크고, 교각도 엄청 크게 만들어졌습니다. 마을에 정부매상이 있는 날이면 대한통운의 빨간색 큰 트럭이 나락을 한가득 실고 지나다녀도 안전할만큼 튼튼하게 지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건축에 대한 지식이 모자라고 혹시 무너질까 두려워서 최대한 교각도, 상판도 크게 짓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 다리 난간에서 물을 바라봅니다. 시뻘건 황톳물이 요동치며 내려갑니다. 가끔은 참외나 수박도 떠내려 갑니다. 다른 사람들은 소도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만 제 눈으로 본 것 중 가장 큰것은 돼지였습니다.
 
이 난간에 선 중학생들은 놀이를 생각해 냅니다. 마른 재릅땅구를 가져옵니다. 이를 노끈으로 크게 묶습니다. 여러개를 묶습니다.
 
물에 띄워 봅니다. 마른 재릅땅구는 물에 뜹니다. 이렇게 여러 묶음을 만들어 노끈의 길이를 각기 달리해서 다리 난간에 묶습니다.
 
난간에 선 학생들중에서 간이 제일 큰놈이 팬티만 입고 강물에 뛰어듭니다. 시뻘건 황톳물에 말입니다. 모두다 숨을 멈추고 물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물속으로 사라졌던 학생이 생각보다 멀리서 떠내려가서 물위로 나타납니다. 정신을 차려 재빠르게 재릅땅구를 잡습니다. 이것을 잡고 강둑으로 헤엄쳐옵니다. 한마디로 목숨건 놀이입니다. 이에 질세라 다른 학생들도 차례로 뛰어내립니다. 대부분 그의 같이 장소에서 떠오릅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재릅당구의 길이를 달리해서 길게 느려트려 놓았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잃은이는 없었습니다. 한두번 뛰어내리면 급격시 힘이 빠집니다. 지나가다 이 모습을 본 동네어른께 혼쭐도 납니다. 그러면 슬그머니 옷을 챙겨 입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무모한 짓입니다.
 
 
 
 

삼하는 마을 성방

 

저는 지금까지 "모시"가 "삼베"와 동일한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무식했죠? 모시와 삼베는 다르다고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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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던 동네는 삼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마을은 성방이라고 부릅니다. 정식명칭은 성방리 우교마을입니다. 이맘때쯤이면 저희 동네는 삼을 삶아 껍질을 벗기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밤낮으로 일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삼을 삶아 껍질을 벗기는 모습은 대략 이러합니다.
 
큰 장대의 끝 부분(전체 길이의 1/3 정도)을 칼처럼 날카롭게 만듭니다.
이것을 들고 삼밭으로 갑니다.
 
이 큰 장대를 삼 사이에 넣고 하늘을 향해 세게 쳐 올립니다. 그러면 삼의 이파리들이 후두둑후두둑 떨어집니다.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장대질을 하는 거라 급격히 피곤해집니다. 또한 이 시기에는 햇살이 따갑습니다. 삼잎에서 나는 열기와 냄새는 쉬 피로해져 자주 쉬게 됩니다. 몽롱해지죠. 이렇게 장정들은 삼잎을 털고, 아낙들은 낫으로 이것을 벱니다.
 
그리고 볏단보다 조금 더 크게 묶습니다.
 
 
이렇게 묶은 단들을 모아 아주 큰 솥에 넣습니다.
이 솥은 사각형입니다. 아주 큰 사각형인데 가로 3m, 세로 1.5m, 높이 0.5m정도 될 겁니다.
 
이 솥을 아주 큰 아궁이에 겁니다. 이 아궁이는 돌과 황토로 만듭니다. 이 아궁이는 강 바로 옆에 있습니다. 아궁이가 걸린 솥에 물을 붓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들이 양동이로 쉼없이 퍼 날라야 합니다. 어느 정도 물이 찼을 때 삼단을 솥에 넣습니다.
 
번갈아 가며 잘 쌓아 올립니다. 틈틈이 물을 부어 마르지 않게 합니다. 보통은 한 2.5m정도 되게 쌓아 올립니다. 김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비닐로 꽁꽁 덮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을 지핍니다. 거의 12시간정도 불을 지핀 것으로 기억됩니다. 오후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마을 아저씨들은 밤잠을 안자고 계속 불을 지핍니다. 지난 겨울에 해두었던 땔감의 1/3은 이곳에서 상용합니다. 아이들은 들 수도 없는 아주 긴 쇠로 된 무거운 부지깽이를 들고 말입니다.
 
아침에 학교를 가다보면 어제 나의 키보다 높던 높이가 절반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습니다.
 
한나절정도 식힌 후 껍질을 벗깁니다.
 
 
껍질은 남녀노소 마을 사람 모두가 벗깁니다. 삶은 삼단이 뜨끈뜨끈할때 가장 잘 벗겨집니다. 햇볕에 말라 잘 벗겨지지 않으면 물을 뿌립니다. 아이들은 보통 한단정도만 벗깁니다. 이렇게 일하는 척만 하고 난후 재에 넣어두었던 감자를 먹고 일단 배를 채웁니다.
 
삼에서 껍질을 벗겨진 후의 가지를 재릅땅구라고 부릅니다. 여기저기 살펴보면 유독 두꺼운 재릅땅구가 있습니다. 이를 적당한 크기로 꺾어서 가져옵니다. 다른 녀석들도 가져옵니다. 자신이 가진 재릅땅구가 더 튼튼하다며 엿치기 하듯이 서로에게 내려칩니다.
 
보통 밑동 부분에 가까울수록 부러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손에 쥐어지는 쪽이 약합니다. 먼저 치는 녀석이 냅다 손잡이 가까운 부분을 내려치면 여지없이 부러집니다. 잘못하다 손을 내려치기도 하는데 이때는 난리가 납니다. 하지만 곧 수습됩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어른들까지 모두 다 밤늦도록 껍질을 벗깁니다. 모기에 물려가면서. 이렇게 성방의 초여름의 밤은 깊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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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s://guideyou.tistory.com/entry/%EC%82%AC%EC%A7%84-%ED%81%AC%EA%B8%B0-%EC%82%AC%EC%A7%84-%EC%9D%B8%ED%99%94-%EC%82%AC%EC%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