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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February 20, 2013

졸업식과 꽃다발


졸업식과 꽃다발

 
어제 아들 녀석이 며칠 후 있을 졸업식에 참석하여 졸업식 노래를 불러야 하기에 연습 때문에 놀지 못했다고 투덜거렸다. 졸업식 시즌이면 내가 경험했던 졸업식 꽃다발 사건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꽃다발을 주고받는다. 특히 졸업시즌은 모르긴 해도 연중 가장 많은 꽃다발을 주고받는 시기일 것이다. 예쁜 꽃으로 장식된 꽃다발은 주고받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한 미소를 짓게 하는 선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 예쁜 꽃다발이 살짝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막내 동생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초등학교는 시골학교라 아이들도 몇 안 되고 시내나 읍내와는 많이 떨어져 있어 졸업식이라고 꽃다발을 파는 상인이 오지도 않는다.
 
막내 동생의 졸업식을 맞이하여 나는 진주 시내에서 예쁜 꽃다발을 샀다. 꽃다발을 들고 시외버스를 타고 초등학교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학교였다. 내가 다니기도 했던 초등학교인데 역시나 정문에 걸린 플래카드 한 장만이 오늘 졸업식이 있다는 것을 알릴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졸업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난 꽃다발을 들고 졸업식장에 들어섰다. 졸업생도 몇 명 되지 않는데 졸업식 축가를 불러줄 후배들도 역시 많지 않았다. 난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위를 살펴보았다. 화려한 꽃다발을 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가진 꽃다발이 가장 화려하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몇몇 아이들이 꽃다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보아왔던 화려한 꽃다발은 아니였다. 그들은 사철나무와 갈대를 이용하여 아주 작고 소박한 사철나무 꽃다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투박하긴 하지만 추운 날씨에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언니 오빠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여 만들었으리라.
 
사철나무 꽃다발을 가진 아이는 내가 가진 꽃다발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꽃다발이 부끄러웠다. 마치 내가 가지고 온 꽃다발이 그 졸업식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그들의 사철나무 꽃다발은 정성과 사랑으로 만든 작품이었다면, 내가 가진 꽃다발에는 정성은 그들만 못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졸업시즌이 다가오면 그날 졸업식장에서 본 사철나무 꽃다발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Monday, August 29, 2011

2011년의 여름을 기억하며

2011년의 여름을 기억하며










 
어느덧 2011년의 여름이 끝을 향하고 있다. 몇 일전 아들 녀석이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게 되면 자기의 여름방학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뭘 말해야하나하고 고민하는 것을 보았다. 문득 나에게 있어 2011년의 여름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봤다.
 
2011년의 여름은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가 많이 왔던 것 같다. 비가 많이 온다고 걱정해야할 입장은 아니지만 주말에 비가 염려되어 방에서 뒹굴다 딸아이에게 예쁜 우산과 장화를 신고 비를 맞아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일 것 같아 데리고 나간 것도 기억난다.
 
2011년의 여름은 모기가 정말 다 사라진 것 같다. 그 많던 모기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니 태어나지도 못하고 물에 떠내려갔나? 모기가 없는 생활이 너무너무 좋은데 괜히 마음 한구석에서 살짝 걱정이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2011년의 여름은 나의 치열한 삶의 시간이자 성취의 시간이었다. 매일 하던 일을 앞으로는 못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 일사의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는데, 그 말의 뜻을 느끼게 해주는 2011년 여름의 끝자락이다.
 
고마워. 2011년 여름.
 
황외석 적다.





 
 

Tuesday, December 28, 2010

눈 내리는 날

눈 내리는 날
 
오늘 대전에 눈이 내렸다. 하얀 눈이 비처럼 빛의 속도로 내렸다. 하지만 따뜻한 날씨탓에 쌓이지는 않았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고 있는데 동료가 딸아이에 아빠가 눈을 내리게 했다고 전화를 해주면 좋아할 거라고 말해줬다.
 
‘내가 눈을 만들어서 보냈다고 하는데 설마 믿기나 하겠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요즘 부쩍 사소한 일에도 나에게 눈 꼬리를 치켜세우는 7살 딸아이 모습이 생각나 혹시나 해서 전화를 했다.
 
“황지윤. 눈 오는데 봤어? 이 눈 아빠가 내리게 한거야.”
“뭐~?”수화기 너머로 지윤이의 황당한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진짜야. 우리 지윤이가 하얀 눈을 좋아하니까 아빠가 보내준거야.”
“어떻게?” 이미 목소리는 의구심이 아닌 놀람으로 바뀌고 있었다.
“아빠가 하느님에게 전화해서 눈을 내리게 했어.”
“진짜? 와~~~” 수화기 너머로는 “엄마. 아빠가 하느님에게 전화해서 나 보여주려고 눈이 오는거래. 쏼라쏼라~~”
 
눈의 약효가 하루는 가야할텐데. 기분 좋은 하루였다.

                                          2010년 12월 28일  아빠 황외석












Tuesday, August 31, 2010

잃어버린 지갑

지난 토요일 청주공항에서 출발하여 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로 들어오는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자 버스운전사 아저씨가 요금을 걷으셨다. 카드는 당연히 안 되고, 운임 3,500원은 지불하지만 버스영수증도 발행되지 않는, 그래서 요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버스라고 생각들게 하는 버스였다.


운전사에게 운임을 지급하고 지갑을 어디에 둘까 잠시 고민하다가 좌석 앞에 있는 거물 망에 잘 보이게 넣어두었다.
‘이렇게 잘 보이게 두었으니 나는 절대로 지갑을 잊어버리고 내리지 않을 거야.’ 
‘그리고 한 10년 이내에 내가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없고, 혹 잠깐 동안 내게 이탈했다가도 내게 돌아왔기에 나는 절대로 에나로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라며 내 지갑을 거물 망에 넣어두었다.
 
버스에 내려서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택시비를 준비하려다 보니 지갑이 없었다. 택시를 돌려 터미널로 급히 돌아갔다. 청소하시는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들어온 게 없단다. 사무실로 갔다. 관리자분이 해당 기사와 통화를 했다. 획득된 게 없다고 했다.
 
혹시 찾으면 연락을 부탁드린다며 전화번호를 남겼다. 주말 내내 혹시나 하며 휴대전화를 계속 만지작거렸지만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 얘기를 듣고 아내가 뿌루퉁했다. 지갑을 잃어버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안 좋은데 아내까지 인상을 쓰고 있으니 짜증이 났다.
 
아내에게 한 소리했다. 내 마음도 안 좋았다. 아내도 나도 뿌루퉁했다.


이젠 잃어버린 내 지갑과의 완전한 이별을 고해야 할 시점이다. 비바람 많이 치는 2010년 8월의 마지막날에 말이다.

아!!! 내 지갑. 안녕 내 지갑. bye bye 내 지갑.

2010년 8월 31일 황외석 씀

Sunday, June 6, 2010

딸 황지윤이의 7번째 생일에 적은 아빠의 편지



예쁜 숙녀가 되어가는 딸 황지윤이에게

지윤아! 먼저 너의 7번째 생일을 정말 축하해. 네가 네 생일 10일전부터 아빠의 편지를 받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아빠는 네게 무슨 말을 해줄까하고 생각을 많이 했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들을 네게 말해줄게.

지윤아. 아빠가 일하는 서울 사무실의 뒤편에는 작은 동산이 있어. 나무며 꽃들이 많이 있는 예쁜 동산이야. 며칠 전 문득 보니 그 동산의 나무며 꽃들이 정말 깨끗한 녹색으로 바뀌어져 있었어. 눈을 약간 찡그릴 정도로 선명한 녹색이었어.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 ‘지윤이는 이런 푸르름의 계절, 신록의 계절이라는 5월에 태어난 정말 축복받은 애구나’하는 생각말이야. 신록이란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로 나온 잎의 푸른빛을 얘기하는데 이런 계절에 태어난 지윤이도 이 잎처럼 희망과 꿈이 넘치는 멋진 아이로 자랄거라 믿어. 예쁜 꿈을 푸르고 푸르게 잘 키워나가는 지윤이가 되었으면 해.

지윤이가 7살 생일을 맞고 보니, 아빠는 네가 태어나던 날이 생각나. 네가 태어나서 처음보는 아빠의 모습이 멋졌으면 하는 나의 바램에, 엄마를 졸라 넥타이에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너를 보러 갔었어. 이 세상 그 누구도 태어났을 때 자신을 바라보던 아빠의 모습을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을 아빠는 알고 있어. 너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그렇지만 아빠는 네가 세상의 예쁘고 멋진 모습만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때문이였어. 그래서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하는 아빠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던. 앞으로도 쭉 예쁜것만 보고 예쁘고 튼튼한 소녀로 자라주렴.

요 며칠간 네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다가 아빠가 희망하는 너의 꿈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 내년에는 8살이 되고 초등학교를 가게 되어 꿈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잖아. 조금은 어려운 말일수도 있지만, 나중에 좀 더 커서 이 편지를 보고 생각을 한번 더 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 첫째, 네가 네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였으면 해. 이런 사람들은 시간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형제들과 엄마 아빠도 소중히 여기지. 시간을 소중히 다루는 사람은 스스로 하는 사람이야. 밥도 스스로 먹고, 잠도 스스로 자고, 책도 스스로 보는 그런 사람말이야. 또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친구들과도 잘 지낼 수 있지. 네게도 멋지고 똑똑한 오빠라는 형제가 있잖아. 잘 지내도록 해.
둘째, 이렇게 멋지고 씩씩하고 예쁘게 자란 후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가슴 넓은 사람이 되었으면 해. 너의 생각이, 말이, 행동이 우리나라를 좀 더 풍요롭고 사랑이 많은 곳으로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이렇게 자라줄거라 아빠는 믿어. 아빠가 지켜보고 있을게. 파이팅.

지윤아!
항상 아빠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 잊지 말고, 밥 많이 먹고 예쁘게 자라렴.
다시 한번 너의 생일을 축하해.
안녕. 사랑해
2010.05.22
7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지윤이를 사랑하는 아빠 황외석이 적다.



Saturday, May 22, 2010

사랑하는 아들 황수민이에게(2010.04.03)

아빠뽀뽀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예쁜 황지윤에게






“아빠뽀뽀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예쁜 황지윤에게

지윤아! 아빠야. 오늘도 청사어린이집에서 잘 놀고 있겠지?

며칠 전까지 날씨가 추워서 찬바람이 쌩쌩하고 불었었지. 그런데도 노란 개나리와 분홍 벚꽃, 하얀 목련이 예쁘게 피어었는데 봤어? 아빠가 주말마다 너와 오빠를 데리고 가 보여줬잖아. 꽃은 예쁜데 추워서 빨리 집에 들어 올 수밖에 없었는데 기억나? 추위는 정말 싫어. 그런데 말야. 오늘 부는 바람에서 봄향기를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바람으로 변했어. 봤어? 느꼈어? 알고 있었어?
찬바람속에서도 예쁜 꽃이 피듯이 지윤이도 나래반의 예쁜 공주님으로 자라줘서 아빠는 너무너무 고마워.

그런데 아빠는 욕심쟁이인 것 알지? 그래서 아빠가 지윤이에게 바라는 희망을 말하고 싶어.
첫 번째는 지윤이가 안팠으면 좋겠어. 며칠 전부터 계속 열도 나고, 기침도 많이 하는 너의 모습은, 네가 아빠에게 이야기해줬던 “성냥팔이 소녀”처럼 가여웠어. 그래서 아빠는 가슴이 아파. 안 아프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빠 생각에는 지윤이가 밥을 좀 더 많이 먹으면 튼튼해질 것 같애. 지윤이가 아픈건 밥을 적게 먹어서 그런 것 같아.
두 번째는 지윤이가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했으면 해. 네가 말할 때 너의 목소리는 마치 “꼬마 쥐의 꼬리”처럼 작아서 잘 들리지가 않아. 그래서 다른 사람이 네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큰소리로 말하기 위해서는 몸을 꼬면 안 돼. 그러면 코브라 뱀처럼 변할 수 있어. 바른 자세로 당당하게 너의 말을 하는 거야. 알았지.

아하하 어때. 아빠는 욕심쟁이 맞지?

지윤아! 너의 까르르 웃는 모습,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린이 집에 있었던 일을 재잘되는 모습, 새근새근 자는 모습까지 모두가 아빠에게는 힘을 솟게 하는 에너지인 것 알지? 에너지가 뭔지 모른다고? 그럼 오빠나 선생님에게 물어봐.
지윤아 사랑한다.
2010년 5월 3일
봄바람이 살며시 부는 밤에 지윤이 아빠가 토순이에게 보내다.


Sunday, May 16, 2010

K 19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의미있는 대사

일요일 낮. 유선방송에서 수차례 했고 나 또한 본적이 있는 “K 19”라는 소련 잠수함을 소재로 한 영화를 봤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대사가 이어진다.

원자로를 수리하다 사망한 이들에게 인민영웅으로 추천하지만 거부당한다. 전쟁 중이 아닌 일상의 훈련이었고, 해군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고 중에 하나에 불과하므로 훈장을 줄수 없다고 한다. 선장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들에게 영웅으로 추천한 이유는 그들의 희생이 해군을 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희생이 조국을 위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희생은 바로 옆 동료를 위한 것이었고 이와 같은 상황이 또 발생한다면 이들과 같은 행동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거창한 명분 때문이 아닌, 그러해야 할 때 그렇게 한다는 것이 소박한 정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10.05.16.




영화 K19 THE WINDOWMAKER


Thursday, April 1, 2010

클래식 음악과 나

베토벤 바이러스. 배우 김영민의 명연기가 작열했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던 드라마였다. 내가 참 좋아했던 드라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 앞서 만들어진 ‘노다메 칸타빌레’ 드라마의 영향을 받았다며 그 독창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어찌되었던 이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앞에 모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 모습을 연출하여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베토벤의 합창이 나오는 제10화다.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지 베토벤의 합창은 그저 그런 클래식 중 하나였지만 드라마의 극적인 구성과 합창하는 인간의 목소리에 나오는 떨림은 나의 가슴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다.



클래식 음악. 나에게도 이 음악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그래서 마니아(mania)만 좋아하는 음악장르라고 예단했던 때도 있었지만, 대학시절 ‘서양음악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수강하며 친해지려 노력한 기억도 있다. 그 수업시간이면 나이에 비해 아주 세련된 중년의 여교수님이 곡에 대한 설명을 하신 후, 조용히 음악을 듣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 것으로 기억된다.



대학 교양과목을 제외하고는 30대 중반까지 거의 클래식을 듣지 않았으나,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난 2005년부터 다시 클래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나는 수업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씩 근무지인 용인에서 학교가 있는 대전까지 왕복하였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고속도로를 달리며 듣던 라디오에서 아주 재미있고 콩콩 튀는 클래식이 들렸다. 그때 들었던 곡이 Henry Mancini의 Baby Elephant Walk이었다. 실제로 아기 코끼리가 그렇게 앙증맞게 걷지는 않겠지만 우리들의 상상 속 아기코끼리는 정말 그렇게 걷지 않을까하는 상상은 즐거움을 준 작품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고 나름 즐거운 상상을 하였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왔다. 아들 녀석은 “코끼리는 커서 쿵쿵하고 걷는다.”며 논리 문제를 제기하고는 제목이 잘못되었다고 딴죽을 걸었고, 딸 아이은 “토순(토끼)이가 걷는 모습”이라며 무조건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과 연관 지으려는 떼를 썼다. 반응이 어떠하든 아빠와 함께한 첫 클래식이였다.



이후 예당TV의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에서 접하게 된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보로딘(Aleksandr Porfir'evich Borodin)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를 알게 되었다. 이 곡을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망중한(忙中閑)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한 달 전 즈음에 아마추어 공연에 아들 녀석과 갔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아들 녀석은 그다지 흥미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Baby Elephant Walk가 연주되자 나의 귀에 대고 ‘아빠. 이 곡 옛날에 아빠가 나한테 들려줬던 곡이지’하며 속삭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내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곡의 제목은 모르지만 그래도 이 곡의 멜로디가 기억의 한구석에는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제 시험을 위해 클래식의 곡목과 작곡가를 외우던 것을 버렸다. 그저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내 마음에 새롭게 생기는 상상, 감정 따위를 느끼는 매개체로 듣곤 한다. 가끔은 아이들과 클래식 듣고 느낌 말해보기 같은 장난도 치면서 그렇게 가까워지고 있다.



근자에 아이들과 함께한 곡은 요한스트라우스의 라덴츠키 행진곡(radetzky marsch), Ennio Morricone의 넬라 환타지아(Nella Fantasia),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환희의 송가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표현은 극명하게 다르다. 딸 아이는 별, 하늘, 천사, 새싹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여 예쁜고 아기자기한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반면, 아들 녀석은 전쟁, 폐허, 장군, 왕, 인간, 승리, 새로운 시작이라는 단어로 굵고, 힘있고, 선과 악의 대결을 많이 표현한다. 이 시간에는 평소와는 다른 표현들, 가끔은 엉뚱한 표현들을 들을 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주말에는 무슨 곡을 들을까 슬슬 고민되기 시작한다.

Monday, March 15, 2010

만해 한용운 생가를 다녀와서

3월이면 봄기운이 완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서해안은 바닷물의 영향으로 이른 봄을 상상하며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초에 이번 여행을 준비했다.  기상청의 일기예보에는 일요일은 매우 화창하고 따뜻할 것이라고 말해 한줌의 의심도 없었다. 아 내일은 따뜻한 봄햇살을 받으며 봄기운이 돋는 서해의 바닷가를 걸을 수 있겠구나 했다.


2009년 즈음에 개통한 대전당진간고속도로를 지나 홍성을 지날 때였다. 도로에 세워진 갈색 안내표지판에는 김좌진장군과 한용운님의 생가가 멀지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내일 돌아오는 길에 시간을 내어서 꼭 들러야겠다.’
‘흠. 홍성에 이런 인물들이 있었단 말이지.’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본 할매 할배섬(?)>


안면도자연휴양림에서 1박을 한 후 가까운 곳에 있는 꽃지해수욕장을 둘러보았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는 전날보다 싸늘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렸다. 가볍게 기상청 험담을 좀 하고난 후 바삐 귀갓길에 올랐다.



‘아참! 만해 한용운님의 생가 터가 있었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즐거운 상상이 이어졌다.
‘일단 한용운님의 대표적인 시 님의 침묵을 가슴에서 울어나게 낭독을 하면, 아들 녀석이 무슨 내용이냐고 묻겠지? 그럼 시에 나오는 님이 무엇을 의미하고, 왜 이런 시를 썼고, 또 한용운님이 내가 살던 곤명의 다솔사에도 기거했었다고 말해줘야지.  그럼 으하하 나를 우러러 보겠지.’


그러나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용운님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네. 험. 쪽 팔리면 안 되는데.아내에게 좀 물어볼까? 님이 무엇을 뜻했지? 이런 젠장 시험만을
위한 공부를 했나 왜 생각이 안 나지?’


대전으로 돌아오는 큰길에서 제법 빠져 아담한 곳에 만해 한용운님의 생가 터에 도착했다. 일단 아들딸을 데리고 생가를 갔다. 여느 유명인의 생가와 너무나 똑같은 모습이었다.
부엌이 있는 초가집. 처마 밑에는 님의 침묵이 적혀있었다.
<만해 한용운 생가>

“아들 딸, 잘 들어. 이거 정말 좋은 시야”
“만해 한용운님은 아주 훌륭하신 분이야.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았아 갔을때 이를 되찾기 위해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헉 열심히 읽고 있는데 한자에 부딪쳤서 낭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이런 낭패가 있나. 아참 아이폰으로 검색을 해보면 되겠다’


아이폰으로 검색하는 잠간 동안에 이미 아들녀석은 나와 시와 한용운님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방명록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아들 녀석은 “저도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한자(漢字)가 한 자도 없는 님의 침묵을 찾은 후 아이들에게 닥달을 했다.
“야! 잘 들어. 다시 읽어 줄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야! 집중하고 들어야지.”
“여기서 님은 조국을 말하는데 그런데 왜 님은 갔다고 말했느냐 하면 조국이 일본에 빼앗겨서 슬퍼다는 것이지. 응 알겠어?"
"야! 잘들어. 그런데 슬퍼만 하느냐 하면 그건 아니야. 새 희망을 얘기하지. 새 희망의 정수박이 이 부분이 바로 독립 즉 광복을 노래한다는 거야. 야. 아빠가 노래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 노래라는 것은 니나노가 아니야. 희망을 이야기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거지. 누가 지었다고?  야야야. 한용운이라 말했잖아. 님이 뭐라고? 그래 조국이야.”


이런 나의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아이들에게 암기를 강요하는 능력없는 샌님 모습이었다.



이렇게 한용운 생가의 추땀에서 열불을 올리며 열강을 하는데,  한쌍의 중년의 부부는 생가를 둘러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이 웃고 지나가고, 아내는 저만치 사립문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딸도 방명록에 적겠다고 나섰다. 뭐라고 적나 가만히 보았다.
“저도 훌륭한 사람이 될께요.”
‘오호 여기서 저도의 ‘도’는 한용운 선생님이 나라를 사랑했듯이 자기‘도’ 나라를 사랑한다는 뜻이겠지?
흠 데려온 보람이 있구만’



광장으로 나오니 ‘나룻배와 행인’, ‘복종’ 등 여러 가지 시비가 세워져 있었으나 설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지식 암기 위주의 견학은 시도할 수 었었다.
‘에궁 내 입만 아프지. 기념관에나 가자’



기념관에서 이런 저런 영상물도 보고 모형도 보았다. 아들 녀석은 홀로 그래픽에 빠져 몇 번인가를 보더니,
“아빠, 한용운선생님이 독립선언문 낭독할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래. 민족대표에는 주절주절”
조금 전 본 홀로 그래픽의 내용을 최대한 근접하게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기념관 옆 만해체험관에는 탁본을 경험할 수 있게 준비가 되어있었다.
<만해 한용운 흉상>

딸 아이는 “나는 스님할래”라며 먼저 선점을 했다.
나는 님의 침묵을 선택했다. 아들 녀석은 내가 선택한 것이 좋아 보였는지 자기가 궂이 님의 침묵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황수민. 이건 글자가 많고 섬세하게 해야해. 아빠가 할께”
“내가 잘 할 수 있어”
기어코 아들 녀석이 님의 침묵을 차지했다.


나는 마저절위(磨杵絶韋) “절구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었다는 뜻과 대나무 책의 가죽 끝이 끊어졌다는 고사로 쉬지말고 노력하라는 뜻” 탁본을 선택했다.
‘‘韋編三絶’과 유사한 뜻이구만.‘

딸아이와 나의 탁본은 그런대로 잘 만들어졌다. 아들 녀석의 탁본은 손에 검정잉크는 잔뜩 묻히고도 예상대로 제대로 된 완성품은 나오지 않았다.
관리자분은 워낙 원칙에 충실하셔서 1인 1매만 가능하다고 하시니 더 요구하자니 남사스럽고, 또 시간도 많이 흘렀고 해서 만해 한용운님의 생가터를 떠나 대전 집으로 향했다.



                                                                               2010.03.14

황외석 적음

Sunday, July 12, 2009

금강자연휴양림에서 2

[황수민이는 공을 던지고]
[황지윤이는 어디론가로 행한다.]




[아빠와 야구 한판]
[결과는 안봐도 비디오죠.ㅋㅋ]


[품은 추신수다 황수민]



[X품은 박찬호 저리가다다. 황외석]




[X품은 박찬호 저리가다다2. 황외석]




금강자연휴양림으로 출발


[다부지게 배트를 잡은 황수민]


[다부지게 배트를 잡은 황수민 2]

[야구 배트 메고 논 메러가는 모습이다. 황외석]


[뭔가를 이룰 것 같은 황수민]



[뭐 하는 짓이냐 황수민]





Friday, July 3, 2009

사람의 눈은 한정없이 게으른기다.


사람의 눈은 한정없이 게으른기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농사를 많이 지으셨고 그래서 논이 많았다.

동네에는 골짜기가 깊어 “정골”이라고 부르던 곳에 우리집 논이 6마지가 있었다.

들에 있는 논들은 제수제방이 잘 되지 않아 비가 조금이라도 많이 오면 물에 잠겨, 어머니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자면 “물에 몸서리가 쳐져서”, 일부러 물이 차지 않는 논은 구하다보니 사게 된 곳이 정골논이였다.

그 논은 여러 또가리-쪼가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중 가장 작은 논은 우리가족이 손수 모내기를 하곤 했었다.

그 논의 모습은 길이가 길고 폭이 좁은 직사각형에 가까운 형상이였다.

모내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신이 나서 즐겁게 하다가, 슬슬 허리가 아파오면 고개를 돌려 얼마나 남았는지 자꾸 뒤를 돌아보곤 했다.

좀더 시간이 흐르면 못줄 넘어가는 속도가 느리다고 투덜거리며 슬슬 짜증을 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못줄은 몇 번을 넘기면 끝나려나? 세어볼까? 못줄의 폭은 내 발자국 크기와 거의 같으므로 셀 수 있겠구나.’

모내기를 하다말고 나는 논두렁으로 달려가 내 발자국을 총총히 놓아보았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 말씀

사람 눈은 한정없이 게으른기다. 부지른키는 손이 부지른코.

요즘 할머니의 말씀이 자주 생각난다. 손이 부지른해야하는데.

2009년 7월

Sunday, May 31, 2009

오지로 떠나는 여행 3-은운리

2009년 5월 27일자 문화일보를 보고
찾아 간 충북 보은군 회남면 은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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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지리와 용호리를 가는 길에 본 마을이다.
사람은 몇 집 있는것 같아서나
거의 폐허에가깝다는 느낌이였다.
휴대폰의 통화권 이탈지역으로 표시된다.

[은운리에서 본 청솔모(?)]


[은운리에서 재미나는 모습의 황지윤]



[은운리에 있던 당산나무]


[은운리에서 본 구름조각]



[은운리에서 아빠 황외석과 아들 황수민과 구름]

오지로 떠나는 여행 2-막지리

2009년 5월 27일자 문화일보를 보고
찾아 간 충북 옥천군 군북면 막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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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지리 가는 길은 멀지도 않고 길이 험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맞은편 마을의 전경과
대청호에서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멋있었다.
[막지리에서 대청호의 물을 보고 난후/황수민]


[막지리에서 대청호의 물을 보고 난후/황수민]

[뒤에 보이는 마을이 막지리다/황외석]


[막지리의 대청호 물가에서 연출/대낮에 달을 보다/황지윤]



[막지리 마을 입구는 산등성이다. 산등성이 마을입구에서 본 맞은편 마을]

마을 이름 느낌으로는 매우 오지일 것 같았으나 용호리보다 덜 오지같았다.


오지로 떠나는 여행 1-용호리

2009년 5월 27일자 문화일보를 보고
찾아 간 충북 보은군 회남면 용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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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리로 가는 길은 험하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많이 구불구불하고,
길 폭도 좁아 차가 마주치게 되면
비켜서기 위해서 진땀을 뺀다.
[충북 용호리에서 바라본 대청호]


[충북 용호리에서 바라본 대청호/황지윤]


[충북 용호리에서 바라본 대청호/황외석]


[충북 용호리에서 바라본 대청호]



[충북 용호리에서 바라본 대청호/멀리 도로가 보인다]





Korean Metal Price : 2026/09/21

Date Metal US Price Price (KRW) USD 2026/09/21 Aluminium, Non-western origin 3,945.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