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 배우 김영민의 명연기가 작열했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던 드라마였다. 내가 참 좋아했던 드라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 앞서 만들어진 ‘노다메 칸타빌레’ 드라마의 영향을 받았다며 그 독창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어찌되었던 이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앞에 모든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 모습을 연출하여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베토벤의 합창이 나오는 제10화다.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지 베토벤의 합창은 그저 그런 클래식 중 하나였지만 드라마의 극적인 구성과 합창하는 인간의 목소리에 나오는 떨림은 나의 가슴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다.
클래식 음악. 나에게도 이 음악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그래서 마니아(mania)만 좋아하는 음악장르라고 예단했던 때도 있었지만, 대학시절 ‘서양음악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수강하며 친해지려 노력한 기억도 있다. 그 수업시간이면 나이에 비해 아주 세련된 중년의 여교수님이 곡에 대한 설명을 하신 후, 조용히 음악을 듣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 것으로 기억된다.
대학 교양과목을 제외하고는 30대 중반까지 거의 클래식을 듣지 않았으나,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난 2005년부터 다시 클래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나는 수업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씩 근무지인 용인에서 학교가 있는 대전까지 왕복하였다. 어느 날 아침 일찍 고속도로를 달리며 듣던 라디오에서 아주 재미있고 콩콩 튀는 클래식이 들렸다. 그때 들었던 곡이 Henry Mancini의 Baby Elephant Walk이었다. 실제로 아기 코끼리가 그렇게 앙증맞게 걷지는 않겠지만 우리들의 상상 속 아기코끼리는 정말 그렇게 걷지 않을까하는 상상은 즐거움을 준 작품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고 나름 즐거운 상상을 하였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왔다. 아들 녀석은 “코끼리는 커서 쿵쿵하고 걷는다.”며 논리 문제를 제기하고는 제목이 잘못되었다고 딴죽을 걸었고, 딸 아이은 “토순(토끼)이가 걷는 모습”이라며 무조건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과 연관 지으려는 떼를 썼다. 반응이 어떠하든 아빠와 함께한 첫 클래식이였다.
이후 예당TV의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에서 접하게 된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보로딘(Aleksandr Porfir'evich Borodin)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를 알게 되었다. 이 곡을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망중한(忙中閑)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한 달 전 즈음에 아마추어 공연에 아들 녀석과 갔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아들 녀석은 그다지 흥미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Baby Elephant Walk가 연주되자 나의 귀에 대고 ‘아빠. 이 곡 옛날에 아빠가 나한테 들려줬던 곡이지’하며 속삭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내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곡의 제목은 모르지만 그래도 이 곡의 멜로디가 기억의 한구석에는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제 시험을 위해 클래식의 곡목과 작곡가를 외우던 것을 버렸다. 그저 들려오는 음악에 맞춰 내 마음에 새롭게 생기는 상상, 감정 따위를 느끼는 매개체로 듣곤 한다. 가끔은 아이들과 클래식 듣고 느낌 말해보기 같은 장난도 치면서 그렇게 가까워지고 있다.
근자에 아이들과 함께한 곡은 요한스트라우스의 라덴츠키 행진곡(radetzky marsch), Ennio Morricone의 넬라 환타지아(Nella Fantasia),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환희의 송가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표현은 극명하게 다르다. 딸 아이는 별, 하늘, 천사, 새싹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여 예쁜고 아기자기한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반면, 아들 녀석은 전쟁, 폐허, 장군, 왕, 인간, 승리, 새로운 시작이라는 단어로 굵고, 힘있고, 선과 악의 대결을 많이 표현한다. 이 시간에는 평소와는 다른 표현들, 가끔은 엉뚱한 표현들을 들을 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주말에는 무슨 곡을 들을까 슬슬 고민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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