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 수민이에게
오늘도 너와 지윤이가 싸웠구나. 물론 네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 아빠가 알고 있지만 어쨋든 지윤이가 화를 내는 이유가 너로 인한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잖아. 긴 말 하지 않겠다. 최대한 사이좋게 지내도록 노력해줬으면 해. 아빠가 지난 몇 년간 네게 가장 많이 한 말이지 싶다.
작년까지 산타가 편지를 보냈는데 올해는 아빠가 보내는 이유는 네가 더 잘 알겠지? 네게 무슨 말을 해줄까 하루 종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론은 평소 아빠가 네게 했던 말들을 조목조목 정리해보고자 한다.
어김없이 눈이 내리는 겨울이고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왔구나. 먼저 Merry Christmas!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는 운동 때문에 아빠가 일어나기도 전에 학교 가는 네 모습을 볼 때면 대견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애잔하기도 하구나. 학교도 추울 텐데 견딜만한거지?
네 학교생활을 보니 아빠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알차게 보내는 것 같아 기분이 좋구나. 연극반에서 용왕역할도 훌륭하게 소화했고, 토요일마다 서구문화원에서 새로운 것도 많이 만들고 네 작품이 표지에도 실렸으니 말이다. 학교 공부에서도 수학에 자신감을 조금 가진 것 같구나. 너의 5학년은 멋진 나날이었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겠구나.
아빠가 올해 네가 무엇을 가장 강조했나 생각해보니 아마도 절차의 타당성이지 않나 쉽구나. 인간은 모두 차이는 있으나 이기심을 가지고 있지. 이기심을 다른 말로 욕심이라고도 하지. 다른 이보다 더 잘 달리고 싶고, 더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싶고, 더 건강해지고 싶고, 더 많이 알고 싶어 하는 것,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하지만 운동은 하지 않으면서 더 건강하고 싶다든지, 책은 읽지 않으면서 더 많이 알고 싶은 것은 올바른 이기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가 고프다고 다른 이의 빵을 뺏어먹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과 같은 이치지. 욕심, 이기심을 달리 표현하자면 목표라고 부를 수 있단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소중한 것이고 이러한 과정은 혹 눈앞의 결과에서 실패로 나타날 수 있지만 긴 시간을 놓고 보면 반드시 너의 노력에 합당한 결과가 나타날 거야. 아빠가 믿는 네 모습은 결과가 좋은 수민이도 좋지만 과정에 더 충실하고, 혹 결과가 실망스럽더라도 포기를 모르는 수민이의 모습이야.
다음으로 많이 한 말이 집중해서 빨리 끝내자는 말이 아니었을까 한다. 언젠가 아빠가 몰입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했던 것 같다. 집중에 집중을 하면 이는 몰입이 되고 이 몰입은 상상할 수 없는 큰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이야. 책을 읽을 때의 네 모습은 몰입 그 자체인데, 공부할 때 너의 모습은 마치 맛있는 것 엄마 몰래 숨겨둔 어린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란다. 그런 너의 모습이 네가 많은 노력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시간 죽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지. 내년에는 정말 몰입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
내년이면 6학년이 되고, 그러면서 가끔 엄마 아빠가 알지도 못하면서 네게 이래라 저래라 할 때도 있겠지만 화를 내지 말고 차분히 너의 생각을 설명할 수 있는 수민이가 되었으면 해.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야. 좀 더 일찍 자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아들
2012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를 대신해서 아빠가 황수민군에게 적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