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그 끝을 보다, 여행의 끝을 보다>
로마는 약 10년과 사뭇 다르다는 느낌은 없었다. 10년 전과 가장 큰 차이는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나오는 곳을 성당 안으로 돌아나가도록 한 것 정도였다. 과거에도 포로로마노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전차경기장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는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여행객의 행렬도 예전과 같았다.
우리 가족은 걷는 것과 버스 타는 것으로 로마를 즐기기 시작했다.
여느 여행자처럼 우리는 포로로마노와 콜로세움, 대전차경기장, 진실의 입을 둘러보았다.
대전차경기장을 직접 걸으며 이런 저런 여행 얘기를 하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었다.
포로로마노를 보고 난 후 캄피돌리아 광장에서 포로로마노를 구경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한국인 아주머니 관광객이 구경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이 포로로마노가 그 유명한 얘기가 탄생한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들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아주머니 관광객의 짧디 짧은 구경이 끝나자 아들이 남은 가족, 나와 아내 그리고 여동생을 대상으로 카이사르 죽음의 미스터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들 녀석의 말로는 가이드가 “나는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과거 자신이 읽었던 습자지처럼 얇은 지식의 근원이 되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기억을 모조리 불러 모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듣고 싶으시면 아래 동영상을 보세요.
배가 아파 화장실이 급했던 아들은 캄피돌리아 광장에서 경찰의 도움으로 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경찰 최고!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도 던지고, 스페인 광장에 갔더니 분수는 보수 작업 중이었다. 스페인 광장 옆 포폴로 광장도 둘러 봤다. 포폴로 광장이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는 활기찬 곳이었다.
보르게세 미술관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었다. 우리는 보르게세 미술관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가, 올 때는 포폴로 광장까지 걸어왔다. 잘 관리된 숲이 걷는 즐거움을 더했다.
트라스테베레 지구에 대한 관광은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Trastevere)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화려한 금으로 장식된 내부의 성당이 멋졌다.
이 지구에는 맛있고 오래된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내는 어느 이름 없는 공방에서 비싸지 않지만 나름의 개성을 가진 가방(bag)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사지 않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도 아까워하고 있다.
하루를 꼬박 투자하여 바티칸 시티도 구경하였다.
우리는 배탈이 난 아들 녀석을 핑계로 한나절을 쉬면서 밀린 빨래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파리에서 아픈 경험을 주었던 빨래방. 그 경험과 이탈리아 아주머니의 도움 그리고 나의 뻔뻔함으로 빨래를 처리했다.
3일 반나절에 걸쳐 로마를 보고 나니 하루가 남았다.
우리는 폼페이를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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